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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일장춘몽 같은 한때의 화려함 사라진 황폐한 유령 도시들

by twoslicesoftoast 2022. 12. 22.

지금은 화려한 불빛에 인구가 넘쳐나는 도시지만 이 도시가 100년, 200년 후에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화려하기 그지없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곳 같은 곳이 여러 이유로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일장춘몽 같은 도시가 있다 하니 궁금하여 클릭해본 지식스쿨의 영상이 재미있어 이렇게 공유해 봅니다.  지식스쿨은 재미난 정보를 알려주는 채널인데요.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되어 자주 들어가 보고 있습니다. 원문 영상은 글 하단에 링크를 두었습니다. 깔끔하게 설명하는 영상 보면 훨씬 귀에 쏙쏙 들어오실 거예요. 글로 보기가 편하신 분들을 위해 이렇게 해당 영상의 내레이션과 영상화면을 캡처하여 글을 정리해 봤습니다. 대표적인 10개 유령도시 한번 살펴볼까요?

 

지식스쿨과 함께 살펴보는 유령 도시 10 곳

안녕하세요. 지식 스쿨입니다. 전 세계를 둘러보면 한때는 화려했지만 어느 순간 황폐화되어 버려진 곳이 많습니다. 1960년대 활발히 건설이 이뤄지며 1980년대 전후 세계 최고의 인구 밀도를 자랑했던 홍콩의 구룡성체는 한때 우범 지역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많은 소기업이 도시에서 번성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997년 홍콩 반환 전 이곳은 영국과 중국 정부가 퇴거 명령을 내려 유중 도시가 되기도 했었는데 현재는 철거된 상태입니다. 구룡 성체와 달리 세계 곳곳에는 철거되지 않고 버려진 상태로 방치된 곳들이 상당합니다. 여러분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은 100년 뒤에 어떤 모습일까요. 과거에는 번성했지만 현재는 버려진 대표적인 장소를 찾아보겠습니다. 

 

 

호주 위트룸

지금 시작합니다. 호주에는 지도에서 사라진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한때 석면 채굴로 호황을 누렸던 위트룸이라는 광산 마을입니다. 1946년 퍼스에서 1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위트룸 협곡에서 청성면 채골이 시작되자 이곳은 호주의 유일한 청석면 생산지로 떠올랐고 급기야 돈이 몰리니 마을이 조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61년에는 900명 가까운 주민이 위트룸의 거주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위트룸의 가치는 점차 떨어졌습니다.

석면 채굴로 인한 건강 문제가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이와 더불어 수익성이 현저하게 저하돼 더 이상 채굴할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1966년 광산은 폐쇄돼 이후 마을의 규모는 줄어들었는데 2022년 들어 마지막까지 남았던 주민이 떠나자 현재는 아무도 없는 곳이 됐습니다. 위트룸은 석면 오염에 따른 위험으로 접근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카디찬

러시아의 수수만으로부터 65km 떨어진 곳에는 카디찬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1940년대 이곳은 소련의 수용소인 굴라크의 수감자들이 석탄 채굴을 위해 건설한 곳이었습니다. 인근에는 두 개의 석탄 광산이 있었고 석탄 채굴 산업이 성장하자 카디찬도 번성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는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했을 정도였는데 1990년대 이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소련이 해체된 뒤 석탄산업은 쇠퇴했고 급기야 석탄 가격마저 하락하면서 도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입니다.

 

 

콜만스코프

더구나 1996년에는 광산의 폭발로 6명이 사망하면서 광산이 폐쇄되기에 이르렀는데 결국 러시아 정부는 주민들의 이주를 추진했습니다. 2010년 이후 이곳은 버려진 채 현재 거주 인구가 전무한 상태입니다. 20세기 초 현재 나미비아는 독일의 식민지였는데 1908년 콜만스코프에서는 독일 광부에 의해 다이아몬드가 최초로 발견됐습니다. 당시도 다이아몬드는 지금처럼 고가의 보석이어서 이곳의 다이아몬드 매장량은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정육점부터 얼음 공장에 이르기까지 각종 시설이 콜만 스코프에 들어섰고 1200명의 사람들이 거주할 정도로 이곳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1920년경 다이아몬드 매장량은 고갈됐고 이곳은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이에 더해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발견되자 사람들은 이곳을 떠났습니다. 1956년 이후 이곳은 유령 도시가 됐는데 현재는 사람이 떠난 자리를 사막의 모래가 채우며 과거의 번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쿠룬다-1

현재 스쿠룬다-1 은 라트비아의 한 도시지만 과거만 해도 이곳은 소련의 비밀 도시였습니다. 냉전 시기 이 지역에는 핵 미사일 탐지를 위한 2개 레이더를 비롯해 각종 군사시설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에 근무하는 군인들을 위해 1963년 건설한 도시가 바로 스쿠룬다-1이었습니다 한 때 스쿠룬다-1은 5천 명의 군인과 1천 명의 민간인이 거주했을 만큼 번성했습니다. 허나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소련이 붕괴되자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독립한 라트비아와 러시아가 레이더 해체를 논의했고 이에 1998년 러시아 군과 군사장비가 철수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스쿠룬다-1은 철거되지 않은 채 60여 채의 건물로 이뤄진 유령 도시가 됐습니다. 당연히 거주 인구는 없는 상태입니다. 

 

 

노르웨이 피라미드

노르웨이 스발바르 군도에는 피라미드라는 곳이 있습니다. 1910년 최초 스웨덴이 피라미드를 개발했지만 이후 1927년 소련에 매각돼 이곳은 석탄 채굴로 이뤄졌던 탄광도시가 됐습니다. 소련의 국영회사인 악티쿠골이 이곳을 소유하며 채굴 작업을 진행해 번성했는데 학교를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지며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대략 900만 톤의 석탄이 채굴됐을 정도였는데 그렇지만 1998년 악티쿠홀은 채굴을 중단하고 이곳을 폐쇄했습니다.

1996년 악티쿠골 전세기가 스발바레에서 추락해 141명이 사망한 데다 석탄 가격은 하락했고 석탄을 채우라는 것도 상당히 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곳은 방치된 채 버려졌습니다. 현재 상당수의 건물은 잠겨 있는 상태고 근본적으로 날씨가 추워 유령 도시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아그담

19세기 초 도시로 성장한 아그담은 현재는 아제르바이젠의 도시지만 과거만 해도 소련체제 하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1개의 공항과 2개 기차역이 갖춰진 상태에서 버터를 비롯해 와인 실크 등 다양한 생필품을 생산해 한때 3만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했던 도시였습니다. 
허나 소련의 몰락 이후 정치적 혼란이 거듭된 가운데 아그담은 제1차 나그로노-카라바흐와 전쟁에 휩싸이게 됐습니다.

 

아제르바이잔군이 철수한 틈을 타 아르메니아 군이 이곳을 공격해 약탈하고 파괴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아그담은 폐허가 됐는데 이에 더해 아르메니아는 이곳을 완충지대로 설정해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2020년 제2차 나그로노-카라바흐와 전쟁이 발발해 다시 한번 무력 충돌이 빚어졌고 이번에는 아제르바이젠이 승리해 현재 아그담은 아제르바이젠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바로샤

1970년대 초 바로샤는 키프로스의 최고 관광지였습니다. 그렇지만 1974년 키르키에가 키프로스를 침공하자 이곳에 있었던 그리스계 키프로스 주민들은 도시를 떠났고 이후 바로샤는 방치된 채 유령도시가 됐습니다. 현재 부키프로스가 이곳을 통제하고 있지만 1984년 유엔은 결의안을 통해 바로시아에 정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최초 원주민이 유일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허나 2017년 키프로스 정부는 피르키의 지지를 받으며 단계별로 바르샤를 개방했습니다. 그러자 키프로스 정부와 eu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고 유엔 안보리도 원주민 위의 사람들이 정착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고키프로스 정부와 트르키에는 이를 무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시마섬

조선인 강제 동원과 관련해 한때 논란이 있었던 이곳은 군함을 닮았다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리는 하시마 섬입니다. 하시마 섬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18km 떨어진 섬으로 일본 거대 기업 미쓰비시에 의해 운용되던 광산 시설이었습니다. 6.3ha 정도의 작은 땅임에도 한때는 지구상에서 인구 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섬의 인구는 1959년 5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곳이 한때 활황기를 맞았던 것은 석탄 때문이었습니다.

1887년에 설립된 해저 탄광에 들어가 석탄을 생산하는 것에 많은 노동 인구가 투입되며 작은 도시가 형성된 셈이었는데 1974년쯤 석탄 매장량이 거의 고갈되고 일본의 주요 연료가 가스로 대체되면서 미쓰비시는 이곳에 사업을 접었고 사람들도 다른 직업을 찾아 섬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섬을 떠나가는 30년 동안 섬은 자연스럽게 버려졌습니다.

 

몬트세라트 플리머스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몬트세라트는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과거만 해도 몬트세라트의 수도는 플리머스였습니다. 1995년 수프리에르 히스 화산이 폭발하자 4천여 명의 플리머스 주민들은 대피했습니다. 몇 달 뒤 주민들이 플리머스로 돌아왔지만 1997년 추가로 발생한 화산 폭발은 치명적이었습니다.

 

플리머스의 80%를 파괴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플리머스의 대부분이 평균 1.4m 두께의 화산재 아래에 묻히게 되어 졸지에 주민들은 난민이 됐습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수도였지만 자연재해로 인해 플리머스는 버려진 유령도시가 됐고 서류상으로만 수도로 남아 있게 됐습니다.  현재 플리머스는 여전히 화산재로 파괴된 상태며 섬 북부의 브레이즈가 임시 수도로 지정된 상태입니다. 

 

 

우크라이나 프리피아트

과거 소련의 한 지역이었던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아트는 체르노빌 원전에서 3km가량 떨어진 도시로 1970년 당시 원전 노동자들을 위해 건설된 도시였습니다. 원자력 과학자와 발전소 직원 그들의 가족을 합쳐 약 5만 명 가량이 도시에 거주했고 이곳에는 대형 쇼핑몰과 놀이공원 초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좋은 거주권을 제공해 주려는 소련 정부의 노력도 있었습니다. 주변에선 꿈의 도시라며 부러워하지 않던 프리피아트는 1986년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인 체로 누빌 사고로 급변한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대량의 방사능이 누출되기 시작하면서 36시간이 지나 도시 전체에는 대피령이 내려졌고 시민들은 급하게 도시를 떠나야 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대피가 일시적이라고 했지만 1300여 대의 버스에 실려 피난길에 올랐던 주민들은 이후 돌아가지 못했고 현재 프리피아트는 텅 빈 아파트 틈새로 나무와 잡풀이 무성한 유령 도시가 됐습니다.

 

 

원문 영상 - 지식스쿨

https://youtu.be/iNx-7YTm-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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