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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인간과 오랜 역사를 지닌 술의 숨겨진 사실 TOP10

by twoslicesoftoast 2024. 4. 16.

재밌는 주제로 순위를 매기는 영상채널의 지식스쿨에서 아주 재미난 소재로 영상을 만드신 것이 있어 정리해봤습니다. 술에 감춰진 사실이 뭐가 있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괜히 궁금해지는 썸네일 보고 클릭해보게 되었는데요. 원문 영상은 글 하단에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한 번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술에 감춰진 사실 TOP 10

술은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지식스쿨입니다. 삼국지의 조조가 단가행에서 근심은 오직 술로서 풀 수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술을 찾습니다. 물론 기분 좋을 때도 사람들은 술을 즐깁니다. 술은 전 세계의 모든 문화에서 등장하는데, 이러한 술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술에 감춰진 사실은 상당히 많습니다. 최근 출판사인 유노책주는 신간 도서인 술맛 나는 세계사를 출간했는데 인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22가지 술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 흥미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익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이를 참고해 인류와 함께한 역사 속 술에 감춰진 사실을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시작합니다. 

 

칭따오 탄생 배경

1888년 비렐름 2세의 즉위 후 독일 제국은 해외 식민지 확장을 추진했고, 그러던 중 부패와 혼란에 시달리던 청을 주목했습니다. 1897년 독일은 칭따오가 위치한 산둥반도를 공격해 교주만 일대를 청으로부터 넘겨받았습니다. 헌데 산둥반도로 이주한 독일인들은 본국에서 즐기던 맥주를 마실 수 없게 되자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본국에서 매번 맥주를 수입하는 것도 일이어서 독일인들은 광둥성을 통제하고 있던 영국인들과 합작 맥주회사 설립을 논의했습니다.

 

결국 논의 끝에 1903년 영국 독일 맥주회사가 설립됐고, 양조장은 칭따오에 세워졌습니다.칭따오로 선정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 현지의 맥주는 석유 성분이 많은 독일의 물로 만들어지는데, 칭따오 현지의 물도 석회 성분이 많아 독일 맥주와 동일한 맥주를 만들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칭따오 맥주는 1904년 처음으로 출시돼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럼주와 북미 원주민

뱃사람들이 즐겨 마셨던 럼주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서도 일상적인 음료였습니다. 그렇지만 북미 원주민들에게 럼주는 달랐습니다.애초 원주민들은 벌꿀이나 옥수수를 발효시킨 도수가 낮은 술을 마셨는데, 유럽인들을 통해 도수 높은 럼주를 접하면서 럼주에 빠지게 됐습니다. 원주민들은 럼주를 마시면 환상을 볼 수 있다고 해 불의의 물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럼주는 원주민들에겐 치명적이었습니다. 유럽인들과 달리 간의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어 중독에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원주민들과 친분이 있었던 미군 장군인 스티븐 커니는 원주민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경고했고, 이의 족장이었던 크레이지 호스는 이를 멀리했습니다. 그럼에도 럼주에 빠져 건강을 망친 원주민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원주민들은 저항력을 상실해 보호구역으로 쫓겨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미국의 정치인이었던 벤자민 프랭클리는 자서전에서 럼주가 인디언들을 전멸시켜 백인 이주민들이 살아갈 땅을 주려고 한 신의 선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몽골인과 아이락

아이락은 암말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2800년 전부터 몽골계를 포함한 유목민들이 마셨습니다. 아이락의 알코올 도수는 0.7에서 2.5도로 낮아 성인 남성 외에도 여성과 아이들이 마시기도 했습니다. 아이락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해 초원에서 과일과 채소를 먹기 힘든 몽골인들에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러한 아이락은 1202년 전투에서 크게 다친 징기즈칸이 의식을 회복하며 아이락이 마시고 싶다고 말한 몽골비사에도 등장하는데, 프랑스의 루이 9세로부터 몽골과의 교섭을 위해 사절단으로 파견된 루브헬기 몽골에서 아이락을 대접받은 사례에도 몽골인들이 아이락을 얼마나 즐겼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아이락을 마시지 않으면 몽골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처럼 아이락은 몽골인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금문고량주와 전쟁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은 공산당에 대륙을 내주고 대만으로 밀려났습니다. 이후 국민당은 대륙 수복을 주장했고, 중국도 대만을 곱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는 1958년 진먼 포격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만의 진먼 섬은 중국 대륙에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포격전 당시 중국군은 이곳에 10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이때 대만군에게는 금문고량주가 있었습니다. 사업가인 예화청은 아버지가 진먼 섬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기념하고자 진먼섬으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진먼 섬에는 양조장이 많았는데 예화청은 양조장을 차려 주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그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소금기에 강한 수술을 활용해 고량주를 빚는 방법을 알아냈고, 이는 쌀보다 부드럽고 향기가 진했습니다. 그가 만든 금문고량주는 군대에도 납품이 이뤄졌는데, 이는 진먼 포격전 당시 대만군이 고량주를 마시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진먼 섬은 현재도 대만의 영토입니다.

 

바카디와 불쇼

쿠바는 럼주의 원료인 사탕수수가 잘 자라는 곳으로 1862년 쿠바에는 럼주를 만들어 파는 회사인 바카디사가 설립됐습니다. 바카디사는 1920년 미국에서 금지법이 시행되자 쿠바에 술을 마시러 온 미국 관광객들 덕에 큰 돈을 벌었는데, 금주법 폐지 이후에는 직접 미국에 진출했습니다. 그렇지만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1959년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나 카스트로 정권에 의해 모든 자산이 국유화된 것입니다. 이때 바카디사는 바하마에서 터를 잡아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고, 1963년에 바카디 152를 출시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75.5도인 바카디 151은 일명 불쇼로 유명했는데 덕분에 바카디사는 대박을 맞았습니다. 이때 바카디사의 사장이었던 보슈는 카스트로의 복수를 시도했습니다. 카스트로 제거를 위해 마피아와 접촉, 미군의 b16 폭격기를 동원해 쿠바 정유공장 폭격 시도, 쿠바 항공 455편 폭파, 미 의회를 동원해 카스트로 견제 법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1994년 보슈의 사망 이후에도 바카디사는 사랑의 뜻을 잇고자 2004년까지 카스트로에 대항하는 공작을 계속했습니다.

 

막걸리와 역사

막걸리는 열량이 높은 술로 밥이나 다름없어서 서민들은 농사일을 할 때마다 막걸리를 즐겨 마셨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청주를 주로 마셨던 상류층과 달리 서민들은 막걸리를 마셨는데, 공적 사적 자리에서 술을 금지한 태종이 서민들을 위해 막걸리를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과 세종대왕이 연회에 참석한 노인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이러한 막걸리는 1963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는데, 이는 막걸리를 빚는 데 주식인 쌀이 많이 소비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밀가루나 옥수수로 만든 대체 막걸리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는 맛이 없어 외면당했습니다. 게다가 이후 소주와 맥주가 그 빈자리를 꿰차면서 막걸리의 위기는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쌀 소비량이 줄어 이를 늘리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과 전통 문화에 대한 향수, 2천년대 한국 문화에 관심을 보인 외국인들 덕분에 해외 수출이 늘면서 막걸리는 후활했습니다.

 

위스키와 해충

위스키는 호박색의 높은 도수를 띤 증류주로 대표적인 고급 술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위스키 관련 기록이 17세기 영국에 남아있는 것처럼 위스키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던 중 1880년대 프랑스에선 해충으로 인해 포도재배 산업이 초토화됐는데 이때 위스키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포도로 만드는 와인과 브랜디는 큰 타격을 입었지만 보리나 메가를 증류해 만드는 위스키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위스키는 세계 주류 시장에서 엄청난 이익을 누렸습니다. 특히 당시 영국은 세계의 광대한 식민지를 확보했었기 때문에 위스키는 이 시기 서양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압생트와 사건사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쑥을 이용해 만든 압생트, 오이노스라 불리는 와인을 즐겼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쑥을 활용한 음료를 약으로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1792년 프랑스의 의사인 피에르 오디네르는 만병통치학으로 쑥을 주재료로 한 압생트를 설명했습니다. 압생트는 증류주로 분류되는데 완성된 압생트의 알코올 농도는 45도에서 72도에 달할 만큼 매우 높았습니다. 이러한 압생트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10년 한 해 프랑스에서만 3600만 리터의 압생트를 소비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합니다.


특히 화가와 같은 예술가들도 압생트를 좋아했는데, 그러다 보니 매일 압생트를 즐겼던 빈센트 반 고호의 경우 자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압생트로 인한 알코올 중독으로 보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도수 높은 압생트로 인한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선 압생트의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급기야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압생트의 판매 유통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마리아니 와인과 코카콜라

페르와 볼리비아가 원산지인 코카인은 잉카제국 시절엔 마취제로 쓰였고, 이후 이는 유럽으로 전파돼 광장지로 주목받았습니다. 이때 프랑스의 화학자였던 엔젤로 마리아인은 알코올 도수 10도의 8.5%의 코카인이 들어간 와인을 제조해 팔았는데, 이는 강장제로 홍보됐지만 중독성으로 인해 엄청나게 판매됐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교황, 레오, 13세, 발명가 에디슨 등 세계 유명 인사들은 마리아니 와인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마리아니 와인의 인기를 주목해 이를 모방한 술과 음료수들이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코카콜라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코카콜라는 음료수가 아니라 코카나무에 잎과 열매를 끓인 추출물에 설탕, 탄산수, 카페인을 첨가해 만든 프렌치 와인, 코카라는 술이었습니다. 이렇게 코카콜라는 모방으로 시작됐지만 현재는 코카인이 빠진 세계적인 탄산음료수입니다.

 

사람 침으로 발효된 시차

유럽인들의 상륙 전 잉카제국에선 맥주나 와인이 아닌 옥수수를 발효시켜 술을 마셨습니다. 이는 시차라고 불리는데 당시 잉카제국에선 시차를 파는 장소가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여성들이 이러한 시차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여성들의 학교였던 아클라와시에서는 시차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커다란 항아리에 물을 담고 햇빛을 밖에 둔 뒤 여성들이 옥수수 알갱이들을 입에 넣고 침과 함께 뒤섞여 걸쭉해질 때까지 계속 씹어 이를 항아리 안에 뱉습니다.


그러면 3~4주 뒤 발효되는데 이를 채로 걸러낸 발효 액체가 바로 시차입니다. 사람의 침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잉카 제국 시대의 치차는 수를 넘어서 사람과의 존중과 우정을 증명하는 증표였습니다. 또한 시차는 종교적인 목적으로도 사용됐을 만큼 신성한 선물이었습니다. 인류가 있는 곳에 언제나 술이 존재했던 것처럼 술은 때때로 역사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유노책주가 출간한 술맛 나는 세계사에는 영상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원문영상 - 지식스쿨

https://www.youtube.com/watch?v=hPChpszt9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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