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흥미로운 주제로 Top 10을 뽑는 지식스쿨에서 사라져 버린 유명인물이라는 영상이 있어 내레이션을 발췌하여 정리해 봤습니다. 과연 누가 있을까 했는데 주로 1970년 이전의 인물들로 행방불명된 이들인데 이때 당시 정보로 찾기가 어려워 미스터리하게 남겨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 속의 인물 들 중 어떤 이들이 있을지 한 번 확인해 볼까요? 원문 영상은 글 하단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지식스쿨에서 뽑아본 사라져버린 유명인물 Top 10
안녕하세요. 지식 스쿨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국내 18세 이상 성인의 실종이나 다름없는 가출 신고는 6만 7천612건이었습니다. 이는 하루 평균 185건 수준이라 적다고 볼 수 없는 규모입니다. 국내에서만 이렇게 많은 실종 신고가 매일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로 시야를 넓힌다면 어떨까요. 아마 집계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그동안 이렇게 사라져버린사라져 버린 사람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유명 인물도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미스터리하게 사라져 버린 유명 인물들을 알아보겠습니다. 10명을 선정했습니다. 지금 시작합니다.
D.B 쿠퍼
1971년 D.B 쿠퍼는 포틀랜드에서 시애틀로 향했던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305편을 공중 납치했습니다. 30분간의 비행이 예정됐는데 이륙 후 그는 자신이 폭발물로 무장했다고 밝히며 20만 달러의 돈과 낙하산을 요구했습니다. 항공기는 예정대로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 착륙했고 이에 당국은 그에게 20만 달러와 낙하산을 제공했습니다. 항공기는 급유 후 다시 이륙했고 D.B 쿠퍼는 멕시코시티로 비행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시애틀에서 이륙해 멕시코 시티로 향하던 중 비행 30분 만에 그는 만 피트 야간 상공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FBI는 그가 사망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건 후 51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헤일즈 보거스(Hals Boggs)
1972년 미국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이었던 헤일즈 보거스는 주 하원의원 선거를 지원하고자 앵커리지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총선을 앞두고 있었던 알래스카 주 하원 의원인 닉 베기치를 비롯해 그의 보좌관 및 조종사와 함께 세스나 310 소형 항공기를 타고 주노로 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륙한 항공기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 항공기 40대의 민간 항공기 50대가 동원됐고 미 해안경비대까지 수색 작업에 투입됐지만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항공기의 비상 신호도 탐지되지 않아 39일의 수색 작업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닉 베기치 주 하원의원 선거를 지원하려 했던 해리 보고스는 닉 베기치를 비롯한 일행과 함께 실종됐지만 실종 상태에서 닉 베기치는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짐톰슨
미국 출신의 짐 톰슨은 1960년대 태국에서 활동했던 세계적인 실크 사업가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현재도 그의 이름은 태국에서 명품 실크 브랜드로 통합니다. 그의 브랜드 제품을 전 세계에서 만날 수 있지만 정작 그는 아직도 실종 상태입니다. 1967년 3월 26일 그는 말레이시아의 카메론 하이랜드에서 일행과 함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 이후 그는 산책에 나섰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500명 이상이 동원돼 11일간 수색에 나섰음에도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납치부터 살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추측이 이어졌는데 그중 1985년 인근 지역의 도로 근처에서 발견된 뼈를 두고 그가 뺑소니를 당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뼈가 짐톰슨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인리히 뮐러
하인리히 뮐러는 공산주의를 극도로 증오한 인물로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뮌헨에서 경찰로 지내다 나치당이 집권하여 인생이 바뀐 인물입니다. 1934년 뮐러는 슈츠스탈렌에 합류했는데 이때 그의 직책은 슈츠스탈렌의 실무 책임자였습니다. 하인리히 히믈러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의 지원 하에 밀러는 빠르게 승진해 1939년 게슈타포 국장이 됐습니다. 당시 그는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정당화하는 거짓 정보를 유포했습니다.
1942년 직속상관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암살된 뒤 밀러는 에레스트 칼텐부르너 휘하에 들어갔는데 이때 그는 유태인 말살 계획을 위한 수용소 운영 업무에 합류했습니다. 아이히만이 그의 부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뮐러는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음 날인 1945년 5월 1일 벙커에서의 목격을 마지막으로 실종됐습니다. 현재까지 그는 행방불명된 나치 최고위급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라울 발렌베리
스웨덴 외교관이었던 라울 발렌베리는 헝가리에서 많은 유태인들을 구했습니다.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스웨덴 외교관의 지위를 활용해 유태인들에게 여권과 스웨덴 비자를 발급하고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스웨덴은 독일과 우호관계였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수만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당시 부다페스트에서는 스위스 외교관이었던 칼 러츠를 비롯해 스페인 외교관이었던 조르지오 페를라스카도 라올 발레메리와 비슷한 방법으로 많은 유태인들을 구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라울 발렌베리는 그들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실종됐습니다.
1945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부다페스에 진입했을 때 독일 스파이로 몰려 체포된 것이었습니다. 1947년 모스크바 KGB 본부 내에 수감된 게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그의 명확한 행적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 페렐만
러시아 출신의 그레고리 페렐만은 수학 천재로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2천년 미국의 클레이 연구소는 푸앵카레 추측 리만 가설 등 7개의 밀리언 문제를 제시하며 각각 1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2년 뒤인 2002년 페렐만은 폐쇄된 3차원 공간 내 폐곡선이 수축한다면 이는 무조건 원구가 된다는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논문이 공개되면서 세계 수학계는 경악했습니다. 2010년 클레이 연구소는 푸앵카레추측을 증명함에 따라 페렐만에게 100만 달러를 지급하려 했으나 페렐만은 동물원의 동물처럼 되기 싫다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한데 그의 수상 거부는 이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06년에는 기하학에 대한 공로로 필즈상을 수상했지만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2011년에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되었지만 이마저도 거부했습니다. 전 세계 미디어가 그를 주목했지만 그는 시선을 피해 은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에토레 마요라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고 최초의 원자로를 만든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에토레 마요라나를 지목해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인물이라 평했습니다. 실제 그는 중성자를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제임스 채드윅보다 먼저 중성자를 발견했을 정도로 상당한 업적을 세웠지만 이를 포함해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한 논문 발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그러던 중 1938년 그는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라지기 전날 은행 계좌에서 인출이 확인됐고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955년 베네수엘라에서 차량 수리를 의뢰했다는 목격담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입니다.
아멜리아 에어하트
1928년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윌머스튜츠가 조종하는 항공기에 탑승해 20시간 40분 동안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여성 승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그녀는 자신이 짐짝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그녀는 비행기술을 쌓으며 단독 비행에 대한 목표를 세웠고 결국 1932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서양 횡단 단독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녀는 더 큰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로 세계 일주 비행이었습니다. 1937년 에어하트는 항법사인 프레드 누난과 함께 2차 시도 끝에 세계일주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해 6월 1일 마이애미를 출발한 그녀의 항공기는 남미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를 거쳐 뉴기니에 이르는 3만 5천 km를 비행했습니다.
이후 태평양을 향해 이륙했지만 7월 2일 그녀는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연료가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지막 교신 후 미 해군과 미 한 경비대가 인근 지역을 수색했지만 그녀는 물론이거니와 항공기조차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 한때 가드너 섬의 유골이 그녀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100% 확인된 사실이 없는 상황입니다.
마이클 로펠러
뉴욕 주지사면서 전 부통령인 넬슨 록펠러의 아들이자 유명 금융가인 존 록펠러 주니어의 손자면서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였던 스탠다드 오일을 공동 설립한 존 록펠러의 증손자는 누구일까요. 그 주인공인 마이클 록펠러는 현재 실종 상태입니다. 1961년 11월 17일 마이클 록펠러는 친구와 함께 네덜란드 뉴기니의 한 근처에서 카누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카노는 전복됐고 카누는 해안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표류하게 됐는데 이때 친구는 카노에 매달렸지만 마이클 록펠러는 수영으로 해안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친구는 다음 날 구조됐지만 마이클 록펠러의 실종은 세계적인 뉴스가 됐습니다.
대대적인 수색에도 발견되지 않은 것을 두고 상어 공격이나 익사로 추정하기도 했지만 인근 이 스마트 부족이 식인 풍습을 갖고 있었던 터라 해안에 도착한 그가 부족민들에게 먹혔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는 저널리스트였던 밀트 매클린이 현장을 방문해 확인했다고 하는데 그렇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드러난 사실은 없습니다.
해럴드 홀트
호주의 제17대 총리였던 해럴드 홀트는 아직까지 사라진 상태입니다. 최고위급 인물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입니다. 호주 총리로 재임 중이었던 그는 1967년 빅토리아주 체어 비치에서 수영을 했습니다. 당시 어깨 통증으로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었지만 그의 수영 실력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지만 수영 도중 그는 사라졌습니다. 당국이 총동원돼 수색 작업을 펼쳤으나 그는 발견되지 않았고 사망으로 추정만 되는 상황입니다. 이후 그의 지위 때문에 이를 둘러싼 추측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위장된 죽음 CIA의 공격 중국 잠수함탑승 등이 있었지만 가장 유력하게 지목되는 건 파도에 휩쓸렸거나 상어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문 영상 - 지식스쿨
https://www.youtube.com/watch?v=zMSXwP-4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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