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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보면 좋은 영상

by twoslicesoftoast 2024. 2. 21.

일하기 싫을 때
번아웃
아무것도하기싫을때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이유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영상입니다. 번아웃 된 친구들의 귀에 잘 안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저도 그런 시기를 겪었으니까...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뻔하고 단순한 이치에 충실할 경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의미를 부여하고, 이타성을 가지고 삶을 사랑할 때 나도 주변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차분한 말씀으로 차근차근 얘기해 주시는 영상이니, 한번 들어보시면 글로 보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원문 영상은 글 하단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전환하는 방법

여러분들 정말 너무 하기 싫을 때 너무너무 피곤해서 몸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럴 때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거 대부분이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아서 그래 하지만 우리는 그 일을 해야 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벌떡 일어나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답 함께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 세 가지로 가르쳐드리는 명지대 교수 김미환입니다.

 

의미와 이타성

여러분들 광고 중에요. 학교 가기 싫다 가야지 니가 선생님이잖아 이거 여러분들 기억나세요? 모모에 대한 광고죠 학교 가기 싫다 그랬더니 대학생인 줄 알았더니 대학생이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죠. 이 광고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꽤 감동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대학생처럼 생긴 그 선생님이 학교를 당연히 가야 된다고 엄마는 얘기를 또 선생님도 그 이야기를 받아들여요.  이유는 뭘까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요.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의미 있는 직업이에요. 아이들을 잘 돌보고 아이들을 가르쳐주는 아이들을 리드하는 위치에 있으까 또 아이들을 가르치고 리드하는 일 자체가 그 일의 성격 자체가 이타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요.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냐면요. 그 선생님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말 학교 가기 싫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무기력증이나 너무너무 몸이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 이런 욕망 같은 게 있을 때조차도 벌떡 일어나서 학교를 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죠. 그 요소가 뭐라고요? 두 가지 의미와 이타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런 것이 적용되는지에 대해서 한번 같이 살펴봤으면 좋겠어요. 제가요 여러분들께 의미, 이타성 이런 얘기하면 좀 무겁게 받아들이 너무 뻔한 얘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나하나 좀 꼭 같이 짚어봤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엄청난 답이 있습니다.

 

의미와 이타성이 필요한 이유

의미와 이타성은 말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마법과 같은 힘을 갖고 있어요. 제일 쉽게 우리가 이 의미와 이타성의 마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요. 우리가 자식을 대할 때 아이들을 대할 때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양육하고 아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습니까? 아이의 인생이 행복하게 0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죠. 이 행위를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기본적으로는 아이를 대상으로 내가 아닌 다른 타자를 대상으로 이타성을 실현하는 것인 우리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 아이의 인생을 동반하면서 그를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우리가 생각할까요? 정말 의미와 이타성의 면에서는 가장 절절하게 느끼는 그런 일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런 이타성과 의미라는 요소가 갖고 있는 마법 때문에 그렇지 여러분들 제 이야기가 이제는 그런 방향의 얘기구나 하고 납득을 하시기 시작할 겁니다.

 

현대사회의 문제점 - 의미의 상실

이걸 우리에게 적용해 보자고요. 내가 직장에 가야 돼. 어제 너무 피곤해서 정말 회사 가기 싫다 그러면 엄마가 가야지 네가 선생님이잖아 이렇게 안 하시잖아요. 가야지 네가 회사원이잖아 이렇게 안 하시잖아요. 저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사실 이렇게 되는 데는 이유는 있습니다. 현대사회라는 거는요. 우리가 회사에 가서 노동을 한다는 것이 대체로 많이 분업화된 상태에서 그 일을 해요. 그러니까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산출물로 만들어져서 그것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지 이걸 알 수가 없어요.


내가 선풍기를 만들고 있어요. 그러면 혼자서 선풍기를 다 만들어서 내가 이렇게 만든 선풍기가 사람들에게 가서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정말 의미 있는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기가 힘들다는 거 선풍기 만드는 것에 아주 작은 공정 하나를 할 뿐이죠. 또 사무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직이 전체적으로 지원 업무를 하기도 하고 또는 기획 업무를 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 사무적인 일 하나로 무엇인가의 산출물이 나올 것이라는 걸 충분히 상상하면서 따라서 현재 내가 분업화된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의미있는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 않은 거예요.

 

현대사의 문제점 - 이타성 연관 부재

또 의미를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은 행위의 이타성을 발견하기도 힘들다는 걸 뜻하죠. 물론 과정의 이타성이라는 건 남아 있어요. 내가 회사에서 이런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하면 다른 직원들이 좀 편할 수 있겠다라든지 또는 내가 고문관이 돼서 일을 못하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라든지 이런 과정에서의 이타성은 물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만 그 강도가 낮은 거예요.

 

그런데 내가 하는 노동이 정말 의미 있는 산출물을 만들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이고 따라서 그 일을 하는 것에 의미를 느낌과 동시에 일 그 자체가 목표 자체가 이타성이라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타성까지 여러분들이 느낄 수 있다면 나 회사 가기 싫다 그러면 어머니가 아니야 너 회사원이잖아 회사 가야지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이 이제는 정말 그렇네 납득이 가는 이야기네 이렇게 들리실 수 있을 거예요.

 

전환해야 하는 것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회사를 다니건 무슨 일을 하건 자신이 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시는 거를 저는 아주 중시합니다. 생각을 한번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분업화된 구조에서 부분적인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어 이거 반복적으로 대해야 돼.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현재 하는 일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고 또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조금 더 이타성을 발휘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벌떡 일어나서 회사를 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해진다는 것이죠.


그런 얘기 마세요. 의미가 문제가 아니라 회사에 가면 내가 정말 견딜 수 없는 환경에서 노동 착취가 너무 심해서 나는 더 이상 이런 착취를 받고 회사를 다닐 수 없어라는 환경에 처해 있어요. 이 경우는 쉽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요. 자신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발견하기 위해서 제가 병행의 삶이라는 걸 되게 중시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병행의 삶을 살아가야 돼요. 그래서 그 의미 있는 일이 찾아지면 이직을 당연히 하셔야 제가 드리는 의미와 이타성이라는 걸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현재 처한 상황이 너무 부정적이라면 지금 말씀하신 대로 이직을 하셔서 의미 있는 일을 꼭 찾으셔야 됩니다.


왜 한 번밖에 살지 않는 인생이니까요. 우리가 또 정말 하기 싫어하고 지긋지긋한 일 가사죠. 가사에 대해서 여러분들 의미부여하실 수 있습니까? 네 이거는요. 자기 가정의 운영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의미 부여가 어려워집니다. 의미 부여가 어려워지면 가사가 점점 지긋지긋한 일이 돼요. 이 가사는 나 혼자 하고 다른 사람 손도 하나 딱딱하지 않은데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가사의 경우도 구조를 바꾸셔야 돼요.


이 얘기도 제가 자주 하는 것인데요. 가족 구성원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자식이건 부모건 그 가족이 가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일들을 적절하게 분담하는 그 구조를 먼저 만드셔야 됩니다. 저는 이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이걸 전제로 해서 가사를 행한다는 것은 우리 가정을 꾸려가는 것이 의미 있다는 것을 더 잘 느끼게 만들어 줄 겁니다. 물론요. 이 가정은 꾸려가는 것보다 파괴하는 게 좋아 극단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의미 부여가 안 되죠. 그렇지만 우리 가정을 운영하는 것이 우리의 부부지간에도 또는 우리의 자식과 부모 관계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어요 각자가 사회적 역할을 함과 동시에 가정 안에서 행복감을 느껴가면서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것 이게 내가 가사노동을 하는 의미야 이렇게 정의할 수 있죠. 이런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가사에 대한 의미부여를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는 분들 이러면 평생 가사는 지긋지긋한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사는 이타성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내가 이 가사노동을 하면 다른 식구들이 덜 할 수 있으니까 여러분들 설거지 하면서 눈물을 툭 흘릴 것이냐 아니면 내가 이것을 설거지를 하면 다른 사람이 설거지를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너무 너무나 기분이 좋아 행복감이 느껴져 이런 이타성 가사는 그런 부분을 느끼기가 쉽다는 점에서 좀 유리한 지점이 있죠.

 

한 가지만 제가 더 예를 들어볼게요. 내가 지금 공부하는 거 예를 들어서 내가 지금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고 있어요. 만약에 그 자격증 시험에 합격을 해서 그냥 내가 편안한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안정적인 그런 직업이 보장되는 것이야. 이 정도 수준이면 여러분들 자격증 시험공부 적극적으로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만약에 그런데요. 

 

이 수준을 넘어서 내가 자격증 공부를 해서 여기에 합격을 하면 정말 이타적인 어떤 사회적 행위를 함과 동시에 내가 월급을 받을 수 있을 또 이 일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또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측면에서 정말 의미가 있어 나는 그 의미를 내 인생에서 꼭 달성하고 싶어 이 생각이 강렬하다면 여러분들 공부의 동기가 어떨까요? 어마무시 크지 않겠어요? 

 

이 동기의 강렬함이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의 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얻어지는 기쁨에 자기 지속성을 아주 잘 유지할 수 있는 그런 힘의 원천이 될 겁니다. 여러분들 공부하실 때 자기가 공부하는 것에 목적이 갖고 있는 의미와 이타적 성격에 대해서 꼭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요. 공부를 같이 할 수도 있어요.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할 수도 있죠. 그럴 때에는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이타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친구에게 직접 가르쳐주기도 하고 또는 내가 도서관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런 미세한 행위 하나하나의 이타성이라는 단어를 여러분들이 잊지 말고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공부를 정말 진지하게 정말 지속적으로 심지어는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힘의 원천이 됩니다. 여러분들 공부를 하거나 가사 일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거나 또는 선생님으로 학교를 다니거나 그 경우가 무엇이든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요.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이타성이라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이것만 가능하다면 우리가 몸이 좀 피곤하더라도 또는 이 바이오 사이클이 조금 쳐지는 그런 시점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와 이타성의 신비로운 힘 때문에요. 우리는 벌떡 일어나서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다. 물론요. 그런 태도로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일상 자체가 좀 더 활력이 나고요.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약간의 즐거움과 행복감 같은 거를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힘이 쭉 빠지거나 정말 그것을 하기 싫을 때 이것을 어떻게 대응해야 될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노하우 같은 걸 갖고 계실 것.
제가 오늘 말씀드린 의미나 이타성 이외에도 제안하실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댓글 남겨주시고요. 지혜 나눔 함께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까지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문영상 - 김교수의 세가지

https://www.youtube.com/watch?v=dWWUYKag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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