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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혈액형을 알고 헌혈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궁금하지 않나요?

by twoslicesoftoast 2022. 10. 12.

헌혈하는 이미지

혈액형 발견에 대한 알쓸신잡

오늘은 유튜브 영상을 보다 재밌는 스토리가 있어 글을 정리해보게 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 복따리TV에서 혈액형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헌혈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한 영상인데요. 꽤 재미난 스토리이기도 하고 20~30대 자주 하던 헌혈도 최근에도 잘하지 않게 되었는데 다시 한번 헌혈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한 영상입니다.  아래에 원문 영상 URL 첨부드렸으니, 영상으로 직접 보시면 더 재미 날것 같습니다. 

 

 

 

출산과함께혈액형유형을아는현재

헌혈의 역사

요즘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혈액형을 알게 되는데요.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혈액형에 대한 개념이 없어 수혈의 성공률은 6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동물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하는 일도 있었죠. 혈액형의 발견은 이러한 시행착오에서 벗어나 수혈의 안전성을 높여 많은 사람을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 올린 인류적 발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혈액형을 알게 된 것일까요.  혈액형의 발견과 생명을 살리기 위한 헌혈의 역사를 오늘의 썰복따리에서 풀어보겠습니다.

 

혈액형의 발견

인류와 혈액의 역사는 16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의 생리학자이자 영국 국왕들의 주치의인 윌리엄 하비가 심장 박동으로 인한 혈액 순환 원리를 발견한 것이 그 시작이었죠. 17세기 이전 서양 사람들은 간이 피의 색과 가장 비슷하고 혈관이 발달해 있는 기관이라 간에서 피가 생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맥에는 단지 사람의 영혼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죠.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가진 밀리엄 마비는 자신의 팔뚝에 실을 묶어 혈관이 잘 드러나게 한 뒤 정맥을 따라 판막을 전후로 피가 어떻게 흐르는지 관찰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끝에 윌리어 마비는 1628년 심장은 펌프 역할을 하며 심장은 생명의 기본이자 모든 삶의 근원이라는 이론을 자신의 논문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를 통해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인류 최초로 혈액 순환 과정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처음으로 수혈을 시도한 사람은 루이 14세 주치의였던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드니였습니다.  1667년 6월 원인 모를 병을 앓고 있던 15세 소년을 대상으로 어린 양의 피를 수혈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혈을 받은 또 다른 환자가 사망에 이르자 파리 의사회는 수혈 금지령을 공표하게 되었고 가톨릭 교황이 수혈 금지 책령까지 내려 이후로 150년 이상 수혈 암흑기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수혈 암흑기조차 소중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인류의 노력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영국의 의사 제임스 블런델은 1818년 위암으로 죽어가던 환자에게 사람의 혈액 약 400cc를 수혈하는 것에 성공합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인류 최초로 사람의 혈액을 사용한 수혈이라고 인정받고 있죠. 이를 바탕으로 블런델은 아이를 낳고 급성 출혈로 죽어가는 산모에게 수혈을 시도하였고 블런델은 11년 동안 10회의 수혈을 시도해 다섯 명을 살아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1829년 수열에 대한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수혈은 낮은 성공률로 인해 그 위험성에 대한 논쟁이 일었으며 더구나 혈액형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수혈은 대중적인 치료 방법으로 사용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의혈액형을발견한년도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혈액형을 알게 된 것일까요.  인류의 숙제였던 수열의 열쇠를 푼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 박사였습니다. 카를은 수혈하다 이물질이 뭉쳐 쇼크나 황다를 일으키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혈액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혈액 응집현상 연구에 몰두한 카를은 1901년 A형 B형 C형으로 혈액을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고 C형은 후에 응집 현상이 없다는 뜻으로 O형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AB형은 A, B, O형 발견 1년 뒤인 1902년 카를의 제자인 드카스텔로와 스털리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지금과 같은 수혈 대중화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난제였던 수혈의 비밀을 풀어낸 카를 란트슈타이너 박사는 혈액형의 발견으로 수많은 인류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고 2004년부터 시작된 헌혈자의 날도 그의 출생일인 6월 14일로 제정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혈의 대중화

수혈이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치료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1차 세계대전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서부전선에서 수많은 부상병이 수혈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죠. 이는 1916년 라오스와 터너 박사에 의해 항응고 보존제가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몸 밖으로 나온 피가 응고되지 않고 수혈에 쓰이기 위해서는 보존제가 없으면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이들은 소금 동이 구연산염 포도당을 섞어 항응고 보존제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전장에서 위기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수혈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헌혈의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혈액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전쟁 중 적십자 활동이 시작되었고 당신의 혈액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같은 표어와 함께 헌혈 호선은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는 약 1천300만 단위의 혈액이 헌혈되었고 런던에서도 26만 리터 이상의 혈액이 모였습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세계 각국의 적십자사로 헌혈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헌혈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헌혈과 수혈의 중요성이 알려지게 된 것은 6.25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6.25 전쟁 중 미국에서 공수된 미국 국민들의 혈액이 한국군 부상자에게도 사용되었고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생명을 눈앞에서 보게 된 한국 군의관들이 수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나라 헌혈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죠. 1952년 가을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국군 부상병들에게 수혈용 혈액을 제공하기 위한 혈액고가 해군의 최초로 창설되었고 이후 1954년 국립혈액원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1958년에는 대한적십자사로 국립혈액원의 기능이 이관되면서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서 혈액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죠.

 

먹고살기 바빴던 1950년대 사실 대중들의 헌혈에 대한 인식은 매우 미약했습니다. 자신의 피를 파는 매혈로 부족한 혈액을 충당했습니다. 당시 헌혈을 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이 끼니 몇 번을 때우고도 남는 돈이었으므로 모두가 어려웠던 그 시절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혈액은행 앞에 장사진을 이뤘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매혈을 일삼는 사람들을 일명 쪼록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매혈이 횡행하던 시기를 지나 1960년대부터 헌혈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월남전에 파병한 한국 장병들을 위한 헌혈 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입니다. 파월 한국군 장병을 위한 우정의 헌혈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 십이월 일일 서울 외국어 대학 남녀 학생 삼백여 명은 자유 반공전선에서 싸우는 주월 한국군 장병과 그 밖의 수를 필요로 하는 우방 용사들에게 대한의 젊은 피를 보내달라고 스스로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혈액의 중요성을 알게 된 1970년에는 정부에서 혈액 관리법을 공포하며 직접 혈액 관리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971년에는 대통령이 제공한 헌혈차 한 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두 헌혈 운동이 그 시작을 알렸죠.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은 서울 명동에 헌혈의 집을 새로 마련하고 매일 낮 한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헌혈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의 헌혈은 한 생명을 구한다는 표호를 내걸고 건강할 때 헌혈하고 위급할 때 수혈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이 운동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일입니다. 1981년 7월에는 정부로부터 대한적십자사가 국가 혈액사업을 위탁받고 전국의 적십자 혈액원이 창설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혈액 사업이 시작되었죠.  1999년에는 혈액관리법을 개정하며 그동안 암암리에 이어져 오던 매혈 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2002년 4월 1일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가 발족되며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헌혈의 집 등을 통해 대중적인 헌혈 사업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헌혈의 필요성

헌혈은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인 동시에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용기를 내셔서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실천에 지금 동참해 보세요. 우리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꾸준히 이어져 온 헌혈은 전 세계를 위기에 빠뜨린 감염병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4월까지만 해도 혈액 부족 사태가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시작되며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하는 국민들이 많아 다행히 현재는 예년의 혈액 보유량 수준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 감소와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특성상 헌혈 수급에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는데요. 헌혈자는 줄어드는 반면 수혈자는 늘어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젊은 층에 대한 헌혈 의존도가 높은 나라인데요. 인구 감소와 코로나19로 인한 헌혈 경험 단절은 젊은 층의 헌혈 참여 감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령화되는 사회 속에 수혈 환자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중장년층의 지속적인 헌혈 참여만이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세상 많은 것들이 발전하고 가상 인간까지 생겨나고 있는 시대이지만 혈액은 지금까지도 인공적으로 만들어 대체할 수 없는 물질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피를 헌혈하는 것만이 수혈이 필요한 사람들의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죠.  헌혈의 고귀한 정신은 변하지 않았지만 헌혈 참여 방식만은 보다 스마트하게 진화했습니다. 

 

 

헌혈하는 방법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헌혈을 예약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죠.  헌혈 앱 레드커넥트를 다운 받으면 가까운 헌혈의 집 찾기부터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자문진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헌혈의 집 방문 일정도 나에게 맞춰 예약할 수 있죠. 혈액 검사 결과까지 모바일로 받아볼 수 있어 헌혈로 자신의 건강까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그 끝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 헌혈 6월 14일 첫 법정 기념일이 된 헌혈자의 날을 맞아 수많은 생명을 구해온 헌혈자들의 헌신을 떠올리며 오늘날 헌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생명을 살리는 가장 쉬운 방법 헌혈에 함께 동참해주세요. 이상 썰복따리였습니다.

 

 

 

원본 영상 - 인류가 최초로 혈액형을 발견한 썰

https://www.youtube.com/watch?v=cskIXGIvG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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